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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2 :: Surah Rahman




보리스 니꼴라예비치 옐쯴이 세상을 떠났다.

한때 그의 정적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쵸프, 황태자의 등극이라 불리웠던 뿌찐은 옐쯴의 죽음앞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러시아에 대한 내 관심이 제대로 시작된 것은 이미 소련이 사라진 뒤부터였다. 내가 자라던 때 북쪽과 관련된 소식은 뭣하나 즐거운 일이 없었다. 여객기를 격추시켜 난리가 나기도 했고, 거국적 (광적) 애국적 분위기 속의 서울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싹 쓸어갔다. 38선을 넘어 밀고 내려온 탱크를 만들었던 나라, 북한에 ‘괴뢰 정권’을 세운 나라, 사람들은 소련을 무서워했다.

 

소련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개방을 통해 그 내부의 경제란이 드러나자, 세상은 이전의 공포심에 대한 보상이라도 얻으려는 듯 소련을 조롱하기 시작했고, 내가 조금씩 의식이라는 걸 갖기 시작하던 때에 언론에 보인 소련의 이미지는 식료품 가게 앞에 길게 줄지어 선 털모자 쓴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인공위성은 쏘아 올려도 비누는 못 만드는 나라. ‘아버지는 우주선을 타고 올라가 지구를 세 바퀴 돌고 왔지만, 빵을 사러 간 어머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우스갯소리로 대변되던 커다란 나라.

 

경제란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소련 해체 후 수 년이 지난 대선 때 난 쥬가노프를 응원했다. 언젠가 보았던 인터뷰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이상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자’라고 일컬었고, 옐찐 정부의 무능력과 부패에 질린 러시아인들은 적잖이 쥬가노프를 지지하고 있었다. 한 때는 쥬가노프에 대한 지지율이 옐찐에 대한 지지율을 뛰어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옐쯴이 승리했고, 옐쯴이 재취임하던 해에 난 러시아 땅을 처음 밟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정치적인 문제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정치적인 것과 관련하여 내가 러시아에서 놀란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서구에서는 고르비라 불리며 큰 인기를 누렸던 고르바쵸프가 러시아 국내에서는 미움의 대상일 뿐이라는 사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 언론을 통해 접했던 다양한 옐쯴의 모습들이 참으로 ‘가관’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런 고주망태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정적을 제거하는 데 있어서 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능구렁이였다는 것.

 

 


옐쯴이 참으로 민망한 모습들을 자주 보이고, 주위의 부정부패가 엄청난 수준에 이르렀을 때, 러시아인들의 대부분은 탱크 위에 뛰어올라갔던 옐쯴의 모습을 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혼란기에 여러 대권주자들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고, 옐쯴은 잠재적 정적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하나씩 제거해갔다. 그리고 자신이 물러난 뒤 대중적 지지를 얻는 사람, 혹은 정치력을 지닌 사람이 등장하여 퇴임 뒤 자신을 위협할 것을 대비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며, 그때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뿌찐을 권한 대행으로 앉혔다. 영향력 있는 대부분의 정적이 제거된 상태에서 몇 개월간 뿌찐은 권한대행으로서 괜찮은 모습을 보였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 몇몇 언론은 이를 두고 황태자의 등극이라 일컬었다.

 

뿌찐은 옐쯴의 기대에 부응했다. 옐쯴 집권기의 부정부패에 대해, 옐쯴이 결정적으로 말아먹은 나라의 경제에 대해 아무것도 들춰내지 않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대신 국민들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고 뿌찐 자신에게 모든 기대를 걸게끔 이끌어갔다.

 



옐쯴 집권기의 무능력과 혼란을 기억하고, 뿌찐을 지지하는 러시아인들은 옐쯴을 두고 그가 잘한 건 후계자 하나 잘 만든 것이라고 평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건 ‘정치적인 일’이다. 소련 경제란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옐쯴에게 최고 권력자의 자리를 내어준 고르바쵸프나, 한때는 높은 지지율을 얻기도 했지만 구시대의 ‘유물’로 인식되어 점차 나이만 먹어가고 있는 쥬가노프, 능수능란한 권모술수로 편안히 삶을 마감한 옐쯴, 그로부터 썩은 권력을 물려받아 현란한 정치쇼를 펼치고 있는 뿌찐, 그 뿌찐 밑에서 ‘찍소리’조차 못하고 있는 예전의 영향력있는 인물들.

 

뿌찐의 지지율은 높으나, 사람들은 그가 옐쯴과 모종의 거래를 했음이 분명하다고 믿고 있었고, 뿌찐에 대한 불만으로 가장 많이 꼽던 것이 옐쯴 시기의 부정부패에 대해 눈감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식인층에서는 물론 억압과 횡포, 전체주의적 정권을 가장 큰 문제로 보고 있지만). 이제 뿌찐에게는 항상 뒷덜미를 잡고 있던 과거의 그림자 하나가 사라진 셈이 되었다. 그는… 내심 웃고 있을까.

 



 

그러나….

죽음 앞에선 많은 걸 함께 묻게 된다.

살아온 모습에 따라, 그 죽음의 의미도 많이 달라지는 법이지만 그래도 죽음이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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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러시아가 겪어야 했던 그 힘든 상황들 속에서도, 보리스 니꼴라예비치는 언제나 러시아의 부흥과 융성, 러시아 민중의 힘과 능력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러시아인이 그 자랑스런 이름-그는 이 이름을 언제나 그만이 가졌던 ‘옐쯴식 억양’으로 이야기했습니다-에 부합되는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중략) 보리스 니꼴라예비치는 떠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가 가졌던 이러한 꿈을 위해 계속 나아갈 것이며 영원히 그를 기억할 것입니다.”

 

-뿌찐의 조사 중에서.

 

 

“블라지미르 블라지미로비치(뿌찐)의 말씀을 보리스 니꼴라예비치가 들었더라면, 아마 그도 기뻐했을 겁니다.”

 

-나이나 옐쯰나의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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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쯴의 마지막 여행.

(옐쯴은 세상을 뜨기 몇 주 전, 요르단을 방문, 예수가 세례를 받은 곳이라 전해지는 장소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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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온갖 생각과 잡념으로 가득차
끝에 가서는 뭐가 뭔지조차 모르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

가끔은 그럴 때
육중한 무언가가 머리를 내리친 듯
멍한 느낌이 들며,
막혔던 것들이 순간적으로 사라져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럴 때는 긴 말이 오히려 구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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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은 기분전환으로 문구류를 구입하곤 한다. 이럴 때 보통 사는 건 볼펜과 연필, 노트인데, 사들고 들어온 연필을 깎을 때 특히 기분이 좋아진다.
얼마전 컴을 바꾸기로 결정하고 열심히 알아보다 오늘 드디어 주문을 하고 돌아왔는데, 그 비싼 컴퓨터보다도 손에 들고 들어온 두 자루의 연필에서 더 큰 설레임을 느끼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아날로그 세대이지 싶다.


*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근 11년만에 '영어 공부'라는 걸 시작한지 이제 보름이 좀 넘어간다.
워낙에 미국 영어를 싫어하는지라 판 펴고 공부라는 걸 한다면 영국 영어로 하겠다고 결심을 했었는데, 여기선 교재를 찾기도 쉽지 않다. 영국 문화원이 있긴 하지만, 영어 공부에 그 돈과 시간(거기에 오가는 시간까지)을 들이기는 솔직히 아깝다는 생각. 그 외에 몇 안되는 교육시설들이 제공하는 건 모두 시험대비용 강좌들 뿐이다.

인터넷 BBC의 영어 강좌와 몇몇 인터넷 사이트들을 즐겨찾기해두고 주교재 삼아, 내 미국식 발음을 교정해보겠다고 혼자 끙끙대는 중인데, 들려오는 감미로운 소리와는 전혀 다른 어설프고 희한한 내 소리에 2주가 넘게 좌절만 한 가득이다. 예전 직장에서는 보스서부터 직원까지 모두 영국 영어들을 썼던지라 나도 모르게 살살 영국 영어식으로 내 소리가 변해간다고 뿌듯해했건만.... 막상 공부를 하겠다고 덤비고 보니 이건 미국영어도 영국영어도 아닌, '연당 영어'다. 이 언어의 가장 큰 특징은 사용 어휘가 매우 빈곤하다는 것과,  러시아어, 한국어, 영어가 아주 절묘하게 섞여있다는 게 아닐까.


저녁을 먹고 난뒤 차를 마시다 오늘 아침에 연습했던 단어들을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아버지께는, 러시아어보다 훨씬 처지는 영어 실력이라고 한탄을 하는 애가, 미국 영어 시험을 보겠다고 하며 영국식 발음을 익히고 있는 모습이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시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등학교 입학 직후 러시아어의 P (스페인어의 r과 유사) 발음이 안되어 하루종일 입이 마르도록 알파벳 하나에만 매달렸던 때를 일깨워주시며 나름의 응원도 보내주신다.


*
잠시 자료 정리를 하며 '에호 모스끄븨(Эхо Москвы; 인터넷으로 자주 듣는 모스끄바 라디오 방송)'를 틀었는데, 손님으로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나와, 모스끄바에 와서 먹었던 음식 얘기서부터, 연극, 영화 등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름 좌절스러운 것은 슬레이터씨가 말하는 것보다 통역이 전해주는 러시아어로 그 내용을 더 깔끔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


*
온블로그가 갑작스레 서비스를 중지하여 그쪽 유저들 사이에 '난리'가 났다. 지인 하나도 그곳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사이트가 사전 안내도 없이 닫힌데다 무료 서비스였기 때문에 대책이 없다는 이야기.

내 경우에는, 포스트는 우선 워드패드나 ms워드로 작성한 뒤, 이미지가 들어가는 글은 웹상의 내 작업실에서 대략 배치하고 설명을 적어서 정리한 뒤에 올리고 있는데, 블로그는 그 이후에도 많은 것들이 오가기 마련.
답글들, 방명록을 통해 오가는 글들, 비밀글을 통해 오가는 정감어린 이야기들...많은 글을 쓰지는 않아도 이런 것들 하나 하나가 내게는 의미가 있고 소중한 것들인데, 어느날 갑자기 엠블이 사라져 열리지 않는 일을 당한다면 내 기분은 어떨까.
온블로그의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
한국 뉴스를 보지 않은지 한달 정도 된 것 같다.
뉴스를 읽지 않으며 살면 뭐가 달라질까 라는 생각도 있었고, 곧 마감이 다가오는 글이 하나 있어 정신이 없기도 해서 이러고 있는데, 결론은 별 차이는 없다는 것.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내가 뉴스를 보건 보지 않건 관계없이 벌어지고 있고,
내가 그 뉴스들을 보건 보지 않건 간에 내가 먹고 살고 책을 보며 글을 쓰는 데는 그닥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

그러고보면 내가 요 근래 들여다보고 있는 것들은, '현실', '지금', '새로움'이라는 단어들과 관계없이도 잘 굴러가는 것들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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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도사
이중적인 병약함... 내가 보는 것은 나에게 상처를 주며, 내가 보지 못한 것은 나를 자책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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